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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제4기 10과 연합과 단절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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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광진 작성일18-12-04 21:35 조회2,9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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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교할동반 시간>

 

*반장은 반원들이 한주일 동안 TMI를 실천한 사항들을 나누도록 하며, 계속 실천하도록 장려한다.(안교교과 시간은 단지 말씀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라, 삶속에서 실천하도록 장려하는 실제적인 시간이 되어야 한다. 배우기만 하는 것은 능력이 없다. 실천하는 데 능력이 있다.)

 

<핵심>

 

회복

 

<토의 및 탐구를 위한 질문>

 

도입 :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기 어려운 이유는?

 

.1. 선교사업에 동역자였던 바울과 바나바가 심히 다투게 된 이유는?

2. 바울과 마가는 어떻게 관계가 회복되었는가?

 

.1. 자신의 노예 오네시모가 도망갔을 때 빌레몬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2. 바울은 빌레몬을 어떻게 설득했는가?

3. 관계회복에 있어서 자발성은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1. 영적인 은사들을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4:12)

2. 나의 은사(혹은 재능)를 통해서 어떻게 교회에 유익을 줄 수 있을까?

 

.1. 관계회복에 꼭 필요한 것이 용서이다. 용서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2. 용서가 쉽진 않지만 그럼에도 용서할 수 있는 이유는?

 

.1. 교인이 어떤 잘못을 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계는?

2. 관계가 잘 회복된 경우를 알고 있다면?

 

<적용, 결심>

 

이 주에 배운 교훈 중에 내가 실천해야 할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실천하겠는가?

 

<답을 위한 도움>

 

.1. 마가를 새로운 선교지로 데리고 갈 것인지의 문제로

 

마가는 이전 선교지에서 어떤 어려움을 만나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되돌아가버렸다. 이에 바울은 그런 나약하고 믿음이 없는 사람을 다시 선교지에 데려갈 수 없다 하고, 바나바는 그래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어 다시 기회를 주자고 했다. 이 문제로 인한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서로 심히 다투다가 헤어지고 말았다.

이런 모습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교회를 떠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택하신 종이라도 결코 완전하지는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통해서도 여전히 선한 일을 하고 계신다. 필자도 한 때 아주 잠깐동안 그 유명한 반내현 목사님을 모신 적이 있었는데, 당시 당뇨 고혈압 간경화 합병증이 있어서 무염식을 준비해드렸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가 먹으려고 밥상 위에 올려놓은 고추장을 보고 불호령을 내렸다. 이런 걸 왜 올렸느냐, 당장 치우라고! 너무나 이해불가한 모습이었으나, 그렇다고 그것이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는 증거는 아니었다. 여전히 그분은 한국의 재림교회를 지켜낸 버팀목으로서 존경받을 분이다.

 

2. 바나바의 중재로

 

바울은 누구보다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을 깊이 체험하고 설파했다. 그러한 그가 자기의 배짱과 맞지 않다고 마가를 내치는 것은 그가 전하는 복음의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상대방을 껴안고 갈 때 답답할 수는 있지만 복음에는 힘이 더 실리게 된다. 시간이 지난 후 바나바는, 마가에게는 용기를 주고 바울에게는 마가의 가능성에 대해 설명하면서 다시 한번 기회를 줘보자고 설득함으로 두 사람 사이를 중재했다. 바울은 바나바의 중재안을 받아들였다.

후에 바울이 마가에 대해 나의 위로가 되고, “나의 일에 유익하다고 했을만큼 마가는 크게 발전했다. 관계의 회복은 서로를 더욱 성장하게 한다.

그리스도인은 중재자로 부름을 받았다. 오늘날 갈등이 많은 세상에서 하나님과 세상을 화목케 하고, 사람 사이를 화목케 하는 중재자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1. 노예의 주인이면서 교회지도자로서 심경이 착잡했을 것 같다.

 

당시의 법으로 노예는 주인의 소유물이었기에 노예가 잘못하면 주인은 자기 뜻대로 처벌을 하거나 죽일 수도 있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에게 유익한 노예도 아니었고 더구나 도망을 갔으니 매우 화가 날 법도 하다. 그러나 교회 지도자로서 그러한 감정을 쉽게 표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한편 도망간 오네시모는 바울의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새사람이 되었다. 그는 바울에게 매우 유익한 동역자가 되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항상 자기 곁에 데리고 있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전에 오네시모의 주인이었던 빌레몬의 승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2. 자의적인(자발적인) 정신을 일깨웠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영적인 아버지 이상의 존재였기에 그 권위로써 자기의 요구를 관철시킬 수도 있었다. 빌레몬도 거기에 대해 토를 달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방식은 빌레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거나 나중에 후회하게 할 수도 있음을 알았다. 바울은 일단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되돌려보내 그의 주인으로서의 권위를 존중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억지가 아닌 자발적으로 오네시모를 처분하도록 배려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이 빌레몬에게 베푼 은혜를 상기시켜 빌레몬의 자발성을 자극했다.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나의 입지를 위해서 억지로 화해하는 것은 결코 화해라고 할 수 없다. 주님이 내게 주신 은혜를 되새김할 때 우리는 기꺼이 상대방과 화해할 수 있다.

 

.1.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고

 

교회내의 다양한 은사들은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섬김으로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튼튼히 세워 성장하도록 주신 것이다. 그것은 자기 과시나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다. 목적을 벗어난 은사의 활용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스스로도 상처를 입고 교회를 무너뜨리게 된다. 은사는 다양하지만 그 은사를 주신 분은 한 성령이시므로 모두가 성령의 뜻에 복종한다면 교회도 연합되고 서로가 만족할 것이다.

 

.1. 상대방에 대한 나쁜 감정을 내려놓음으로 서로 자유를 누리는 것

 

대개 용서는 상대방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용서하지 않는다고 해도 상대방은 전혀 괴로워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사실은 용서란 나를 위한 것이다. 용서하지 못할 때 내 마음이 괴롭고 불편하다. 그러나 용서할 때 내 마음도 평안하고 자유롭게 된다.

 

2. 주님의 용서 때문

 

주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심은 단순하게 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받을 죄의 댓가를 자신이 받으심으로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용서의 가치는 무한하다. 그러한 용서를 깊이 경험할수록 다른 사람의 죄를 깨끗이 용서해줄 수 있다.

 

.1. 교과 참조.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단계를 거쳐야 하는 이유는, 그 목적이 그 영혼의 신앙을 회복하고 교회와의 연합을 회복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문제를 공개하여 당사자를 곤혹스럽게 하지 말고 가능한한 조용하게 접근함으로 그를 배려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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