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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과 첫 번째 선교사 아브라함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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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용범 작성일15-07-05 06:29 조회3,9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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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과 첫 번째 선교사 아브라함

 

 

 

기억절 :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갈 3:6~8)

 

 

첫째 날(일) 아브라함의 부르심

 

*도입질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아브라함이 살던 곳은 갈대아 우르(오늘날의 이라크 지역의 우르)였고 그곳은 우상숭배가 만연한 곳이었습니다. 갈대아 우르에는 그의 조상들이 이미 자리를 잡은 곳이기에 아브라함이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평범한 삶을 살기에는 더 없이 편하고 익숙한 곳이었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 대해 큰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큰 뜻은 첫째, 아브라함을 통해 메시야가 태어나는 것입니다.(창12:1-3⇒갈3:16, 마1:1)

 

둘째, 아브라함이 경험한 하나님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드러냄으로 하나님의 품성을 아는 지식(호6:3)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반응으로 하나님을 선택함으로 하나님의 생명이 이어지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이 일을 위해 아브라함은 세상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선교사로서 부르심 받았습니다.

 

 

둘째 날(월) 왕들에게 전한 아브라함의 증언

 

*도입질문: 소돔성 주위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인해 롯이 붙잡혀 갔을 때 아브라함이 행한 행동(창14장)을 통해 하나님은 어떤 감화를 이 세상 사람들에게 끼치셨나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이 민족 간의 전쟁이 아브라함이나 롯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 전쟁에 관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쟁으로 인해 소돔에 거하는 조카 롯에게도 피해가 발생하자 아브라함은 즉시 행동에 옮겼습니다. 아브라함은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삼백십팔인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그 가신을 나누어 밤을 타서 그들을 쳐서 파하고 다메섹 좌편 호바까지 쫓아가서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 조카 롯과 그 재물과 또 부녀와 이민을 다 찾아 왔습니다.(창14:14-16)

 

전쟁의 승리에 대하여 기쁨을 나누기 위해 찬자온 살렘 왕 멜기세덱으로부터 축복의 기도를 받은 후, 멜기세덱에게 전리품의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환영하기 위해 마중 나온 소돔왕에게 아브라함에게 돌아올 몫은 취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을 돕기 위해 왔던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은 제하고 모두 돌려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이런 행동을 통해 이방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고, 이기심이 아닌 동정과 사랑으로 생명의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전쟁에 기꺼이 참여한 아브라함에 대한 감사와 그런 행동을 하게 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새롭게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자신들이 알고 있던 신들의 성품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 인상적이었을 것입니다.

 

 

셋째 날(화) 믿음의 모본

 

*도입질문: 아브라함이 보여준 믿음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갈대아 우르에서의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아브라함은 잘 알지도 못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행동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이 선택과 순종을 성경은 크게 집중하였고, 그것을 믿음의 행동으로 기록하였습니다.(히11:8)

 

그러나 이 이후의 아브라함의 모습과 행동은 처음 출발과 달리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자신에게 없음을 드러내는 시간이었습니다. (1.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왔지만 기근으로 인해 그는 하나님께 묻지도 아니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계속하여 남쪽으로 옮겼습니다.(창12:9-10)

 

2. 애굽에서 자신의 목숨을 생각하여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하게 하여 위험을 자초하였습니다.(창12:15)⇒이 일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 메시야가 와야 할 하나님의 계획을 무너뜨릴 수 있는 믿음 없는 행위였습니다.

 

3.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 약속의 아들이 태어날 것을 몇 차례 말씀하셨지만 아브라함은 아이를 낳을 처지가 지났음을 의지하여 자신의 종인 엘리에셀이 자신의 아들이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말씀하였습니다.(창15:2-3)

 

4. 자신과 아내의 상태가 아들을 낳을 상황이 아님을 알게 된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갈을 통해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하나님의 약속한 그 아들이라고 믿고 싶어 할 만큼 현실을 초월한 믿음이 없었습니다.(창16:1-2)

 

5.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한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고 거듭 말씀하시지만 아브라함과 사라는 그 말이 가당치 않다고 생각하여 비웃었을 만큼 믿음이 없었습니다.(창17:17, 창18:12)

 

6. 많은 세월이 지났어도 아브라함은 여전히 믿음이 없어서 그랄에 우거할 때에 애굽에서 행했던 똑 같은 모습으로 자기의 아내를 누이라고 하게 하여 위험에 빠졌을 만큼 믿음이 없었습니다.(창20:2))

 

이런 아브라함과 사라의 모습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칭하기가 민망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브라함이 어떻게 믿음의 조상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작품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어떠하심을 보여주심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신뢰하자 믿음이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일은 첫째, 보여주는 시각적인 재료를 통해 믿음의 안목을 키우셨습니다.(창15:5) 둘째, 청각적인 재료를 통해 믿음의 확신을 키우셨습니다.(창17:5, 15) 셋째, 소돔성과 고모라 성에 있는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품성을 경험하게 함으로 믿음을 확고히 하셨습니다.(창18:22-33) 넷째, 약속대로 이삭을 낳게 하심으로 믿음이 더욱 분명하게 하셨습니다.(창21:1-6)

 

이런 하나님의 모습과 행하심으로 인해 만들어지기 시작한 아브라함의 믿음이 드디어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말씀을 그대로 믿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위하여 친히 제물을 준비하시리라”(창22:8)는 하나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을 보일 수 있었습니다. 말씀을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품성을 믿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시작하시고 성숙시키신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넷째 날(수) 순례자 아브라함

 

*도입질문: 아브라함 안에 믿음이 만들어지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아브라함에게 믿음이 만들어지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의 시간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알아갈수록 그의 믿음에 변화가 왔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무조건적인 은혜가 여러 가지 상황과 부닥치면서 아브라함에게 밝히 보이고 들리고 느껴질 때, 아브라함에 대한 믿음도 점점 커지고 성숙되어 갔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여정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하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기회의 시간입니다. 사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해석입니다. 일생을 통해 깨닫기 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경험과 확신의 시간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른 믿음과 다른 크기의 믿음이 만들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이 우리 자신에게 매우 소중하고 중요한 시간입니다.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시고, 그 경험을 통해 발견한 하나님의 크기만큼 우리의 믿음의 크기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지난 삶의 여정을 인도하심 하나님의 손길을 잊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면 하나님은 그 믿음을 믿고 더 높고 깊은 경험 속에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십니다. 그 과정이 고단하고 힘들 수 있지만 지난 삶 속에서 경험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크기로 넉넉히 한 단계 더 큰 믿음의 길을 들어설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가진 현실의 삶이 매우 소중한 시간임을 깨달을 때, 우리의 삶이 더욱 진지해 질 것입니다. 이런 과정이 우리의 믿음을 성숙하게 함으로 절대로 낙심하지 말고 더욱 힘차게 나아가야 합니다.

 

 

다섯째 날(목) 가족 속의 선교사

 

*도입질문: 가족이라는 사랑의 울타리를 주신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가족은 사랑으로 단단히 결합되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셨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죽음 이외에는 끊을 수 없는 단단한 울타리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가진 이기심을 이용하셔서 자기의 가족이라는 조건 속에서는 최선을 다하는 사랑으로 가족들을 구원하시고자 하십니다. 남을 위한 구원의 노력 이상으로 자신의 가족들의 구원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아시기에 하나님을 아는 사람을 가족들을 위한 선교사를 부르셨습니다.

 

가족을 위한 선교사가 되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러나 무엇보다 확실한 가족 사랑을 근거로 하나님은 하나님을 아는 한 사람을 통해 나머지 가족들을 위한 선교사로서 행하도록 부르셨습니다.

 

사랑은 결국 가족들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습니다. 끈끈한 가족의 사랑으로 온 가족을 가장 크고 생명 되는 사랑을 하시는 하나님께로 이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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