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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과 베드로전·후서의 중심 주제들(질문,대답,부가설명)06/2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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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7-06-17 09:20 조회4,6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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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4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57분

 

● 연구 범위 : 사 53:5~6, 9, 레 16:16~19, 11:44, 롬 13:1~7, 고전 14:40, 딤후 3:16

 

● 기 억 절 :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벧전 3:18).

 

베드로전·후서는 실질적인 목적을 위해 기록되었다. 베드로전서는 신자들에게 닥친 박해가 큰 문제였다. 베드로후서의 문제는 거짓 교사들이었다. 베드로는 신자들 앞에 놓인 난관에 관하여 그들에게 경고할 뿐 아니라 그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서신을 기록했다.

베드로는 그 두 가지 문제에 대하여 신학적인 언어로 답했다. 박해로 인한 고통은 베드로로 하여금 구원으로 귀결되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묵상하게 했다. 그리고 거짓 교사들에게는 심판이 임한다. 이 심판은 하늘에서의 천년기가 끝나고 예수님이 구원 받은 자들을 데리고 이 땅에 다시 오신 후에 벌어질 사건이다.

이번 주에 우리는 베드로가 다루었던 다섯 가지의 주제 곧 우리에게 구원을 주었던 예수님의 고난, 우리의 행위를 판단하시는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에 대한 우리의 실질적인 반응, 곧 있을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우리의 소망, 사회와 교회 속에서의 질서, 우리의 삶에 지침을 주는 성경의 역할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학습 목표

 

깨닫기 : 베드로가 다루었던 주요 신학적인 주제들을 이해하고 그것들이 성경의 나머지 부분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살펴본다.

느끼기 :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의 보증과 재림의 소망에 전율한다.

행하기 : 거짓 교훈에 주의하고 구주의 은혜와 그분을 아는 지식 안에서 성장한다.

 

➋ 우리가 자주 예수님을 생각하고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우리의 속죄를 감사하고 확신하는데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옛 죄 용서를 잊어버리고 베드로의 사다리를 올라가는데 실패할 것이다. 

➌ 우리의 믿음과 행위는 어떤 관계라고 생각합니까?

※ 행위는 믿음의 결과이다. 

➍ 재림의 소망을 붙잡지 않으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가능성이 큽니까?

※ 세상 조류대로 떠내려가기 쉬울 것이다. 

 

결론 : 베드로는 기독교 신학에서 다음의 다섯 영역을 특별히 강조했습니다. ⑴ 우리의 구원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 ⑵ 임박한 심판을 맞이하는 신자들의 경건한 행위, ⑶ 곧 오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 ⑷ 사회와 교회 내의 질서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 ⑸ 우리의 삶에 필수적인 성경의 역할.

 

 

첫째 날(일) 6월 18일 고난, 예수 그리고 구원

 

1. 다음의 성경절들이 구원에 관하여 어떤 진리를 드러내는지 살펴보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벧전 1:2).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8~9). “너희가…대속함을 받은 것은…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8~19).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22~25).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벧전 3:18).

 

답: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에 대한 진리를 드러냈었다. 

 

베드로는 보통 예수님이 죄를 위한 대속물로 고난을 당하셨다는 문맥에서 구원을 언급한다. 예를 들어 벧전 2:22~24에서 그는 예수님의 고난에 대해 말하면서 사 53:5~6, 9을 상기시키는 언어를 사용한다. 예수님이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벧전 2:24)다는 말씀은 대속적인 희생의 개념을 나타낸다.

희생 제사에 관한 구약 성경의 설명을 보면 죄인들은 성소에 제물을 가지고 와서 그것 위에 손을 얹는다. 그러면 상징적으로 죄가 죄인에게서 제물로 옮겨진다. 그리고 그 제물은 죄인을 대신하여 죽는다(레 4:29~30, 33~34, 14:10~13). 제단에 쌓인 죄의 부정은 속죄일에 깨끗하게 제거된다(레 16:16~19).

희생 제물의 피는 속죄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보혈로 대속함을 받았다(벧전 1:18~19). 바울도 대속적인 죽음이라는 동일한 사상을 설명했다. 예수님은 죄를 알지 못하지만 우리를 위해 죄가 되셨다(고후 5:21). 벧전 3:18이 말하듯이 그리스도는 죄를 위해 고난을 당하셨고 의로운 자(예수님)가 불의한 자(우리)를 대신하였다.

베드로도 바울처럼(롬 3:21~22) 믿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신자들에게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8~9)고 말했다. 구원은 경건한 행실에 따라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우리가 믿고 그분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할 때에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확신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에게 있다. 만약 그것을 우리에게서 찾아야 한다면 우리가 어떤 확신을 가질 수 있겠는가?

 

<부가설명> 모든 성경의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구속 사업이다. 당연히 베드로의 편지 중심은 예수님이시다. 예수께서 말씀하나님으로 지구를 창조하셨고, 물론 삼위일명 하나님여호와께서 함께 창조하셨다. 그리고 모든 피조물이 창조주 안에 굳게 서도록 하였다.(골1:17) 그런데 지구의 아담은 그의 모든 후손이 될 생명의 씨를 가지고 창조이신 그리스도를 떠나갔다.(고후11:3) 아담은 생명을 잃었고 그의 후손이 될 생명의 씨는 사망의 씨가 되었다. 창조주께서 그런 아담에게 수명을 주셔서 일단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셨으나 그 모든 후손은 사망의 존재들로 세상에 태어났다. 그래서 세상은 사망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말씀하나님은 이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도록 하기 위하여 친히 사람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사망을 처리하셨다. 그리고 부활하셔서 생명과 썩지 않을 것을 드러내시고(딤후1:10)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예수 안에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사망을 처리하셨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시고 피를 흘리시고 죽기까지 하신 것이다. 성경은 이것을 잘 가르치고 또 베드로도 이 사실을 체험한 제자로서 그 사실을 신자들에게 다시 상기시키고 확인하게 하였다. 우리도 이 사실을 자주 생각하면서 감사와 찬송으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교훈 : 희생 제도가 말하듯이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음으로 말미암아 속죄를 받고 우리의 의로운 행위가 아니라 그분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둘째 날(월) 6월 19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벧후 3:11).

 

1. 베드로는 다른 어떤 것보다 벧후 3:11에서 제기한 주제로 자주 돌아갔다. 다음의 성경절들을 읽어 보라. 베드로는 그리스도인 행위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벧전 1:15~17, 22, 2:1, 3:8~9, 4:7~11, 벧후 3:11)

[벧전1:15~17,22]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벧전2: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벧전3:8,9]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4:7~11]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벧후3: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답: 예수님이 사신 것처럼 거룩하게 살라고 권고하였다.

 

그의 두 서신을 보면 베드로는 여러 관점에서 그리스도인 행위를 염두에 두고 여러 주제들을 계속 반복한다. 첫째, 베드로는 하나님의 심판과 그리스도인 행위 사이의 관련성을 두 번 강조한다(벧전 1:17, 벧후 3:11).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행위를 판단하실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둘째, 베드로는 몇 차례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고 언급한다. 구약 성경에서 거룩한 것은 성전에서 사용하거나(출 26:34, 28:36, 29:6, 37)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용도로 구별된다(예를 들면 창 2:3에서 안식일이 그렇다). 사실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그분의 백성들도 거룩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원래 계획이었고 이것이 베드로가 다루는 주제이기도 하다(레 11:44, 19:2, 벧전 1:15~16). 어떤 것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과정을 ‘성화’라고 부르는데, 베드로의 바람은 그의 신자들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화되고 예수님께 순종하게 되는 것이다(벧전 1:2).

셋째, 베드로는 성화된 자들에게 합당한 세부적인 행동 지침을 제공하였다. 그들은 악독, 기만, 외식, 시기와 비방의 말을 버려야 한다(벧전 2:1). 그들은 마음을 같이 하여 서로를 사랑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벧전 3:8~9). 그들은 선함, 경건함 그리고 사랑을 가져야 한다(벧후 1:5~7). 진실로 그들은 변치 않는 사랑을 유지해야 한다(벧전 4:7~11). 마지막으로 베드로는 그의 독자들에게 그들의 염려를 예수님께 맡기라고 권면한다(벧전 5:7).

 

<부가설명> 성경이 그리스도인을 거룩하게 살라고 권하는 것은 거룩하지 않은 상태에서 거룩하여지는 과정을 거쳐서 거룩한 상태로 돌아오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관점을 가졌다면 그것은 성경과 전혀 다른 사상이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사망을 폐하고 생명과 썩지 않을 것을 드러내었기 때문에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서 생명이 있는 거룩한 산 존재가 되는 것이다. 사망의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썩는 일을 그치게 된다. 그리고 거룩한 생명이 그들을 주관하기 때문에 거룩하게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거룩하라고 하고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즉 예수님 안에서 얻는 생명의 작용을 원활하게 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 생명 작용을 방해하는 요소를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하면 안 되는 것은 할 수 있지만 안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게 되어서 못하는 것이다. 쉽게 이해하자면 늑대가 진짜로 사슴이 되면 더 이상 늑대의 생태를 나타낼 수 없게 되고 오직 사슴의 생태만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그리스도인이라는 뜻이고 구원받았다는 상태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거룩하게 살라고 하는 것이다. 아멘.

 

교훈 : 우리의 믿음은 모든 면에서 삶을 통해 나타나야 한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모든 악한 행위를 제거하고 거룩하고 경건한 행위를 따라야 한다.

 

 

셋째 날(화) 6월 20일 재림의 소망

 

1. 다음의 말씀들은 미래에 있을 사건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벧전 1:4).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벧전 1:17).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벧전 4:5~6).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벧전 4:17).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 3:1~10).

 

답: 각 사람의 행위대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것이며 모든 것이 사실대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을 잇도록 살아라.

 

베드로전서를 받은 수신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박해였다. 베드로는 그들의 삶이 비록 박해로 인하여 곤란을 겪게 되었지만 하늘에 그들을 위하여 쇠하지 않는 상급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상으로 그들을 위로한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의 서두에서부터 신자들을 위하여 하늘에 썩지 않는 유업이 보관되어 있다고 말한다(벧전 1:4).

베드로는 미래에 있을 두 가지 즉 최후의 심판과 불에 의한 악의 소멸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지금은 박해가 있지만 공의와 심판이 이루어질 것이며 신자들은 영원한 상급을 받게 될 것이다.

베드로는 세 번의 다른 경우에서 심판을 언급한다(벧전 1:17, 4:5~6, 17). 그는 하나님이 모든 인류를 그들의 행위에 따라 공평하게 심판하시리라고 말한다(벧전 1:17). 그는 예수님이 산 자와 죽은 자들을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점을 주목한다(벧전 4:5). 그는 또한 심판이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된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살펴본다(벧전 4:17).

베드로는 경건하지 않은 자들이 전 세계적인 불 폭풍 속에서 멸망하리라고 강조한다(벧후 3:7). 베드로는 예수님이 정말 오시는지 아닌지에 관하여 제기된 문제들을 다루기도 한다(벧후 3:1~10).

그는 예수님의 재림이 지연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더 많은 사람에게 회개와 구원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는 또한 미래에 있을 심판의 확실성이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거룩하고 흠 없는 삶을 살도록 설득할 것이라고 말한다. 비록 베드로가 그리스도인들의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삶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그는 여전히 그의 독자들 앞에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미래의 소망에 주목했다. 요약하자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과 순종함으로 전진해야 한다.

 

<부가설명> 재림은 반드시 있다. 재림이 없으면 하나님의 구원 사업은 결과를 보지 못한다. 일을 하다가 중간에 그만 두고 완전하게 완성하지 못한 것이 된다.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은 반드시 그 일을 완성하실 것이고 그것이 재림과 심판이다. 어떻게 재림하시지 않겠으며 심판하시지 않겠는가? 그 심판의 대상은 세상과 그 중에 산 사람들과 루시퍼와 그의 모든 부하천사들이다. 종국에는 우주 앞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의롭고 참되시다는 것을 인정받는 일도 있다. 이것을 하나님이 판단 받으신다고 했다.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롬3:4) 그래서 온 우주가 하나님은 의롭고 참되시가는 것을 진심으로 고백하는 일이 있게 된다.(계15:3,4) 뿐만 아니라 루시퍼와 그 일당들도 예수님을 주라고 시인하여 무릎을 굻고 경배한다.(빌2:9,10) 그리고 그들에게 행한 하나님의 심판은 의롭고 참되시다고 고백하고 그들의 존재와 생명을 반납하고 불 못에서 완전히 소멸되어 그 존재를 우주에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오직 생명 있는 자들만이 생명이신 삼위일명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영생하게 되는 것이다. 

 

교훈 : 그리스도인들은 오늘의 현실에서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되 우리 앞에 다가올 하나님의 심판과 영원한 상급을 바라보며 재림의 소망을 붙잡아야 한다.

 

 

넷째 날(수) 6월 21일 사회와 교회 안에서의 질서

 

1. 아래의 성경 본문을 읽어 보라. 베드로는 정부와 교회의 지도력의 중요성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가? 신자들은 두 권위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이 말씀들은 우리가 어디에 살든지 관계없이 오늘의 상황에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가?

벧전 2:11~21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벧전 5:1~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답: 베드로는 신자들이 사회와 국가에서 질서를 잘 지키며 성경과 정면충돌되지 않는 것은 수복하라고 권고한다. 그처럼 교회에서도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교회의 어른들과 지도자들에게 순종하라고 권고하면 지도자와 신자들이 피차 겸손하라고 말한다. 지도자들은 또 섬김의 지도력으로 일하라고 권고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간혹 정부나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박해를 받는 시대에 살았다. 그래서 베드로와 바울이 정부의 바른 역할에 대해서 해야 했던 말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벧전 2:13~17, 롬 13:1~7). 정부는 악행하는 자들을 억제하는 역할을 수행하라고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이다. 물론 통치 권력에 문제가 있는 시대도 있다. 베드로 시대의 신자들이 이런 문제에 직면했다. 심지어 여러 해 동안 그런 문제는 악화되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훌륭한 정부는 법과 질서와 사회 안정을 유지한다. 오늘날에도 법과 질서가 붕괴되어 있는 예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합리적인 정부가 절실한 필요임을 알고 있다. 맞다. 훌륭한 정부는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복 중에 하나이다.

베드로는 훌륭한 교회 통치도 중요하다는 바울의 의견에 동의한다. 바울은 교회의 예배에 관해서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전 14:40)고 주장한다. 베드로도 교회 지도자들에게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벧전 5:2)라고 요구했다.

그들은 겸손과 돌봄으로 신자들을 이끌어야 한다. 지역 교회는 조심스럽게 인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훌륭한 지도자는 비전과 결집력을 제공하고 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들의 은사를 사용하게 동기를 부여한다.

 

<부가설명> 질서는 중요하다. 질서가 없으면 일이 안 된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초대 교회에 사도들은 교회의 지도자들을 세웠다.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이름과 권위로 교회를 섬겨야 했다. 그러나 예수께서 본을 보여주신 대로 섬기는 지도력으로 지도해야 했다. 신자들은 그런 지도자들에게 예수님을 순종하듯이 순종해야 한다. 이 둘이 서로 이와 같은 자세로 일해야 했다. 국가도 지도자들은 국민을 위하여 올바르게 지도해야 했다. 그러나 세상은 일단 루시퍼가 주관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업에 엄청 반감을 가지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지 참 교회의 일을 방해하는 쪽으로 움직일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원칙을 버리도록 강요하지 않는 범위에서는 순복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혁명가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감화로 개인을 거듭나게 하는 쪽으로 이끄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거듭난 삶으로 주위에 본이 되어야 한다. 반정부 이야기나 정책의 부당성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입에 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 교회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것도 좋은 것이 아니다. 교회에서는 거룩한 담화가 주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아무튼 베드로는 사회적으로나 교회에서나 질서 있고 품위 있는 모습으로 생활하도록 권고한 것이다. 

 

교훈 :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뿐 아니라 하나님이 세상의 악을 억제하고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세우신 세속 정부에 대해서도 그 권위와 질서를 존중해야 한다.

 

 

다섯째 날(목) 6월 22일 성경의 권위

 

아래의 성경절들을 읽어 보라. 이 말씀들은 성경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는가? 성경은 우리의 삶과 신앙에 어떤 역할을 하는가?

[벧전1:10~12]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벧후1:16~20]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19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20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벧후3:2]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벧후3: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답: 성경은 사람의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사람을 시켜 쓴 것임을 강조하고 열심히 연구하고 깨달아서 바른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베드로후서에서 베드로는 거짓 선지자와 맞선다. 그가 신자들에게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벧후 3:2)하라고 말할 때에 그는 두 개의 권위의 원천을 가리켰다. 오늘날에도 우리에게는 선지자들의 말씀이라는 동일한 원천 곧 구약 성경이 있다. 현재 살아 있는 사도들은 없지만 신약 성경에 계시된 그들의 영감적인 증언이라는 더 좋은 것들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 부활의 일대기를 남겼다.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의 활약상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사도들의 영감적인 서신들도 읽을 수 있다. 바울은 성경의 권위를 강조했다(딤후 3:16). 베드로도 성경을 교리와 도덕적인 권위의 원천으로 제시했다.

벧후 3:16을 보면 베드로는 성경이 진리의 원천일지라도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이해하게 하신 기별에 주의하지 않는다면 진리의 원천조차 곡해되며 이는 끔찍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신자들에게 경고한다.

우리는 그의 말을 바탕으로 오늘날 성경 연구의 기본 원칙이 무엇인지를 상기해야 한다. 우리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 우리는 성경 전체와 각 책 그리고 각 장의 배경을 고려하여 성경을 읽어야 한다. 그것을 기록할 당시 기자가 특별히 말하려는 것은 무엇이었는지도 살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이 기록되었을 당시의 역사적인 정황에 비추어 성경을 읽어야 한다. (베드로전·후서의 경우 그 정황은 1세기의 로마 제국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구원이 성경의 중심기별이라는 지식(벧전 1:10~12)과 영적인 관점을 바탕으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삶의 정황 속에서 성경을 읽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진리를 깨닫기 원하시는가? 우리는 기록된 말씀을 어떻게 우리의 삶에 적용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인가?

 

<부가설명> 예수를 믿는 종교인 성경의 종교는 성경이 전부이다. 현재의 우리는 성경을 떠나서 예수님을 만날 수 없다. 믿는 도리를 배울 수도 없다. 오직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고 바르게 믿는 도리도 배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되는데 그리스도의 말씀은 성경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른 성경적 믿음을 가지기 위하여서는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바르게 깨달아야 한다. 바르게 깨닫기 위해서 성경 전체의 사상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전체의 사상과 일치하지 않는 그럴듯한 설명이나 해석은 취하면 안 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사람의 생각으로 설명하거나 해석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성경을 연구하기 위하여 성경 앞에 앉을 때에는 자기를 완전히 굴복하고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성경이 하는 말씀을 귀 기울여 조심성 있게 자세히 듣고 자세히 읽고 성경 전체의 사상과 일치하도록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베드로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강하게 나타낸다. 그리고 자기가 체험한 변화산의 경험이 확실하지만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는 그 경험보다 더 확실한 예언의 인도를 받아 빛 가운데 걸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교훈 : 우리는 성경을 권위의 원천으로 삼고 성령의 지도를 받아 겸손하게 성경을 연구하며 그 원칙과 교훈을 삶에 적용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기여해야 한다.

 

 

여섯째 날(금) 6월 23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베드로의 서신들은 다양한 신학적인 주제들을 다루면서도 그리스도인의 삶과 서로를 대하는 태도를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를 알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진리대로 사는 것은 더 중요하다. 앞서 우리에게 이런 말이 주어졌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벧전 1:22). 그가 영혼을 순결하게 하는 일과 진리에 대한 순종을 어떻게 연결시키고 있는지 주목하라. 진리는 우리로 하여금 깨끗한 마음으로 서로를 열렬히 사랑하는 백성이 되도록 변화시킨다. 순종, 마음의 순결 그리고 사랑 이 세 가지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이다. 우리가 이러한 의무를 따른다면 우리의 삶과 우리의 교회가 얼마나 달라지겠는가? 적어도 그것이 교회의 연합이라는 의미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 보라. “형제들이여, 그대들은 고향과 그곳에 있는 교회로 돌아갈 때 그리스도의 정신을 지니고 가지 않겠는가? 그대들은 불신과 비판의 정신을 버리지 않겠는가?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서로 단결하고 연합해서 일해야 할 필요가 있는 시기에 도달하고 있다. 연합에는 힘이 있지만 불화와 분열에는 연약함이 있을 뿐이다”(가려 뽑은 기별, 2권, 373~374).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벧후 3:12에서 사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그날을 ‘재촉’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벧후 3:12)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날을 재촉해야 한다는 것은 어떤 뜻입니까? 우리가 어떻게 재림의 날을 재촉할 수 있을까요?

※ 진리를 순종하여 깨끗하게 살면서 재림기별을 속히 전파하는 것이다. 

 

➋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첫째 책으로 주셨고 천연계를 둘째 책으로 주셨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에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이 있다는 사상은 진화론적인 관념으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둘째 책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첫째 책으로부터 어떤 도움을 얻어야 할까요? 첫째 책과 둘째 책에 대한 이해의 충돌이 있을 때에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까?

※ 성경의 계시를 중심으로 천연계를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천연계만 보면 결과에서 원인을 추리하게 되지만 성경을 중심으로 보면 원인부터 알아서 결과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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