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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택하심(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12/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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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7-12-08 16:07 조회4,0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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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6일 안식일

일몰:오후 5시 15분

 

연구 범위 : 롬 10~11장

 

기억절 :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롬 11:1).

 

이번 주에 우리는 롬 10장과 11장을 연구하되 주로 11장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바울의 논리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이 두 장을 포괄적으로 읽는 것이 중요하다.

이 두 장은 수많은 논쟁의 중심에 있어 왔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나타나는 한 가지는 모든 인간의 구원을 보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열망과 사랑이다. 구원에서 제외된 집단은 없다. 롬 10장은 이 점을 분명히 한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롬 10:12). 모든 사람은 죄인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한다. 이런 은혜는 국적이나 혈통이나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오직 온 세상의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이에게 주어진다. 역할이 바뀌었지만 구원의 기본 계획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바울은 롬 11장에서도 이 주제를 이어간다. 여기서도 바울은 택하심과 부르심에 관하여 말하는데 그것은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역할에 관한 것이지 개인의 구원에 관한 것이 아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초기 기독교는 세계를 복음화 하라는 책임을 맡았다.

 

※ 학습 목표

깨닫기 :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것임을 이해한다.

느끼기 :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구원의 은혜가 필요함을 인정하며 모든 인종과 민족들을 긍휼히 여긴다.

행하기 :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한다.

 

➋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관계에서 하나님이 차별이 없으시다는 사실은 어떻게 드러났습니까?

※ 구원이 모두에게 주어졌고 그것을 전하는 사명도 동일하게 주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➌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기 위해 그들을 불순종 가운데 두셨다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롬 11:32)

※ 이스라엘이 불순종하는 일로 이방이 그 사명을 받게 된 것과 그렇게 하여 또 이스라엘이 복음을 받을 수 있게 한 것을 설명하는 말씀이다.

➎ 구주를 영접한 유대인들은 마지막 때에 어떤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 영원한 복음을 전하는데 연합하여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➏ 우리의 옛 믿음의 동료들이 후회함이 없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은혜로 돌아올 수 있도록 우리가 어떻게 도우면 좋을까요?

※ 친교하고 우리 생활이 복음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결론 :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로 선택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동일한 구원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모든 사람을 동정하는 마음으로 대하며 더욱 자원하는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첫째 날(일) 12월 10일 그리스도와 율법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 10:4).

 

1. 이전의 말씀들을 염두에 두고 롬 10:1~4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이 주는 기별은 무엇인가? 우리는 언제 ‘자기 의’를 세우려는 위험에 빠지게 되는가?

[롬10:1~4]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답: 사람이 예수를 믿고 자기 행위를 바라보면 자기 의를 세우는 위험에 빠진다. 예수님이 모든 율법을 성취하신 분이라는 것을 믿고 그분께 전적으로 굴복할 때 하나님의 의를 얻는다.

 

율법주의의 형태는 다양하다. 어떤 것은 매우 미묘하다. 자신을 바라보는 자들, 즉 자신의 선행과 식습관, 엄격한 안식일 준수, 그들이 금하고 있는 일들, 심지어 최고의 의도를 가지고 행했던 업적들을 바라보는 자들조차 율법주의의 덫에 빠지고 있다. 우리는 순간마다 죄에 빠지기 쉬운 자아보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의와 반대되는 ‘자기 의’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롬 10:4은 로마서 전체 기별의 본질을 간파하고 있는 중요한 성경절이다. 우선 우리는 말씀의 배경을 알 필요가 있다. 많은 유대인들이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쓰고 있었다(롬 10:3). 그들은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추구하고 있었다(롬 10:5). 그런데 메시아가 오심으로 진정한 의의 길이 제시되었다.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의가 베풀어졌다. 그분은 구약의 제사 제도가 가리켰던 분이었다.

여기에 나오는 율법의 정의에 십계명이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십계명의 폐지를 의미하지 않는다. 율법은 우리의 죄와 잘못, 부족을 지적함으로 구주에 대한 필요와 예수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용서와 의에 대한 필요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율법이 우리를 인도해 주려고 했던 종착점이기 때문이다. ‘마침’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텔레오’는 ‘목표 또는 ‘목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리스도는 율법이 우리를 인도하고자 하는 최종 목표이다.

이 말씀이 십계명, 특히 넷째 계명의 폐지를 가르친다고 보는 관점은 바울과 신약 성경이 가르치는 수많은 교훈에 역행하는 결론에 이를 뿐이다.

 

<부가설명> 위의 성경말씀에는 ‘하나님의 의’와 ‘자기 의’가 대조되어 있다. 자기 의는 자기가 율법을 얼마나 지키는 가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물론 그가 예수를 믿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신앙은 자기 행위가 신앙의 모습이 된다. 그는 자기를 의지하는 것이다. 비록 예수를 믿었어도 이제는 자기가 예수 안에서 성취된 그것을 이루려고 하면 자기의 능력을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님이 드러낸 생명이다. 즉 예수님의 부활이다. 이 부활의 생명이 신자의 능력이 되어야 한다. 그 생명이 예수님이 이루신 삶을 내 안에서 살도록 해야 한다. 바울이 갈라디아 2:20에 한 고백이다. 걸음마다 호흡마다 예수님의 생명력으로 활동하는 것이다. 바로 생명의 성령께서 죄와 사망에서 해방하게 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전적으로 예수님의 것이지 자기의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율법의 마침이 도셨다는 것은 그분 이후에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고 그분 안에서 율법의 목적이 성취되었다는 뜻이다. 우리가 예수 안에 있으면 우리도 율법의 목적을 이룬 사람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율법의 목적은 우리가 죄인 곧 사망의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하여 생명으로 옮기도록 경고하는 것이고 예수님이 바로 그 생명으로 오셔서 그분 안에서 우리도 그 생명을 얻게 된 것이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예수께서 내 안에서 사신다. 그러니 율법의 목적이 성취된 것이 아니겠는가.

 

교훈 : 예수님은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 이제 우리는 자신의 의를 바라보지 말고 그리스도의 의와 은혜에 시선을 고정시켜야 한다.

 

 

둘째 날(월) 12월 11일 은혜의 선택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롬 11:1, 5).

 

1. 롬 11:1~7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가르침을 어떻게 부인하고 있는가?

[롬11:1~7]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2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저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송사하되 3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4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5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 7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

 

답: 이스라엘민족은 구원에서 제외되었다는 사상은 성경적이 아니다. 또 구원받을 사람은 예정되어 있다는 사상도 성경적이 아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바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증거로써 은혜로 택하심을 받은 남은 자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구원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그것을 영접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우리는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오순절에 회심한 집단은 모두 유대인이었다. 그다음 베드로가 보았던 특별한 이상을 통해서 이방인들도 동등하게 그리스도의 은혜에 접근할 수 있으며 복음이 그들에게도 전해져야 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행 10장, 행 15:7~9 참고).

2. 롬 11:7~10을 읽어 보라. 정말 하나님은 예수님을 거절한 이스라엘이 구원에 대하여 눈이 멀도록 하셨는가? 이런 이해는 어떤 점에서 잘못되었는가?

[롬11:7~10]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 8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9 또 다윗이 가로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10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답: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다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직분을 얻었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은 특권의식에 빠져서 그들의 직무를 보지 못하나 것이다. 

 

롬 11:8~10에서 바울은 유대인들이 그 권위를 인정하고 있는 구약 말씀을 인용한다. 이 말씀은 마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리석게 만들어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게 하신 것처럼 설명한다. 정말 하나님께서 구원을 밝혀주는 빛을 보지 못하도록 그들의 눈을 가리신다는 말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로마서 9장의 조명을 받을 필요가 있다. 바울은 개인의 구원에 관하여 말하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구원에 있어서 어떤 집단도 제외시키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당했던 역할에 관한 것이다.

 

<부가설명> 로마서 9장부터 11장까지는 구원 얻을 사람과 얻지 못할 사람에 대한 말씀이 아니다. 이것은 복음을 증거할 사명을 감당할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다. 하나님께서 복음 사업을 온 세상에 증거하는 일을 위하여 아브라함을 택하셨다. 그의 이 사명을 이을 자는 이스마엘이 아니고 이삭이었고 또 그것을 이을 자는 에서가 아니고 야곱이었다. 야곱에게 와서 이스라엘 민족을 형성하게 하시고 그 민족이 나라를 건설하게 하신 후에 이스라엘 민족과 나라를 통하여 이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사명을 맡긴 것을 그들이 구원의 특전(特典)을 입은 것으로 착각하였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대신에 이방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지 못한 자라고 도외시 하였다. 그래서 이들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대신에 그것을 그들만의 특권으로 누리며 이방인을 무시하였다. 결과로 그들은 복음 증거의 특권을 상실하게 되었고 교회에 넘기게 되었다. 교회는 유대인들만으로 구성되지 않았다. 이방인들이나 유대인들이나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교회가 자기 직무를 감당하는 것으로 유대인들에게 주신 사명이 그들의 손에서 떠났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사명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신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들이 하나님께서 은혜로 남겨둔 자들이다. 은혜로 남겨둔 자는 구원을 위한 자들이 아니고 사명을 위한 자들이다.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사명을 깨닫는 사람들은 다 이 일을 위하여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교훈 : 하나님은 결코 유대인들을 버리시지 않았다. 첫 번째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유대인이었다. 구원의 역사 속에서 그들이 감당해야 할 역할이 있었을 뿐이다.

 

 

셋째 날(화) 12월 12일 원 가지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롬 11:17).

 

1. 롬 11:11~15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서 바울은 어떤 위대한 소망을 전하는가?

[롬11:11~15]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12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14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15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답: 이스라엘이 자기 직무를 감당하지 못하여 이방인에게 복음 전파의 특권이 넘어갔으나 그들이 이렇게 된 것으로 깨닫게 되면 다시 그들에게 주신 직무를 수행하게 될 것인데 이것은 부활의 경험으로 표현하였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두 개의 평행 문구를 발견할 수 있다. ⑴ “그들(이스라엘)의 충만함”(12절)과 ⑵ “그(들의) 받아들이는 것”(15절). 바울은 이스라엘의 쇠락과 퇴출은 한시적인 것이며 그 뒤에 충만함과 용납이 있을 것을 마음에 그린다. 이것은 바울이 11장에서 제기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는 질문에 대한 두 번째 대답이다. 바울에 따르면 그들은 단지 한시적으로 버려진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2. 롬 11:16~24을 읽어 보라. 여기서 바울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롬11:16~24]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18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19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20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23 저희도 믿지 아니하는 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얻으리니 이는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24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은즉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

 

답: 이스라엘이 근본이고 이방인은 접붙인 존재라는 것을 말하면서 이스라엘 중에 구주를 영접하지 않은 자들도 돌아올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 또 접붙임을 받은 이방인들이 스스로 교만하지 않아야 된다는 경고도 말한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신실한 남은 무리를 귀한 감람나무에 비유하였다. 그 나무에서 잘려진 가지 몇 개는 믿지 않는 자들을 의미한다. 이 비유를 통해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음을 증명한다(2절). 뿌리와 몸통은 아직 남아 있다.

믿는 이방인들이 이 나무에 접붙임을 받았다. 그들은 믿는 유대인들을 상징하는 뿌리와 몸통에서 수액과 영양소를 받아야 한다.

예수님을 거절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어났던 일은 이방인 신자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성경은 ‘사람이 한번 구원받으면 그 구원은 영원하다’는 식의 교리를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가 구원을 거저 받았듯이 자유롭게 구원을 거부할 수도 있다. 우리가 ‘실수할 때마다 구원을 잃어버린다’거나 ‘완전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는 생각도 조심해야 하지만, 반대로 ‘한번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구원의 특권에서 멀어질 수 있는 선택은 불가능하다’는 생각도 피해야 한다. 단지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22절)는 자들만이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신자들은 자신의 선함을 자랑하거나 동료 인간에 대하여 우월감을 가져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구원은 선함이나 우수함의 대가가 아니라 선물이기 때문이다.

십자가 앞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함이라는 표준 앞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죄인이라는 점에서 똑같다. 우리에게는 자랑할 것이 없다. 우리의 자랑은 이 땅에 오셔서 고통을 당하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해 죽으시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본을 보여주시고, 그렇게 살 힘을 약속하신 예수님밖에 없다. 그분이 없다면 이 세상이 제공하는 것들을 초월할 만한 소망은 없을 것이다.

 

<부가설명> 바울은 구원의 길이 이스라엘을 통하여 계시된 것을 바탕으로 이 주장을 펴고 있다. 예수님은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났다고 말씀하셨다.(요4:22) 그렇기 때문에 구원을 이야기하면 유대인을 배제할 수 없다. 구주 예수가 바로 유대인으로 오신 것이다. 그래서 뿌리가 유대인, 이스라엘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그 뿌리는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이 없는 이스라엘은 뿌리가 될 수 없다. 이방인이 유대인으로 오신 예수님에게 접붙임을 받아야 한다. 유대인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역사적으로 예언적으로 예수님께 붙은 원 가지였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을 거절하고 주신 사명을 저버리므로 꺾인 가지가 되었다. 그 자리에 이방인이 절대적 다수를 이룬 교회가 접붙여졌다. 그러나 이 교회에 유대인, 곧 민족적 이스라엘 사람도 포함될 수 있고 그들이 포함되어 예수님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되면 죽은 자가 부활하여 생명의 능력을 드러내는 것과 같은 역사가 있게 되지 않겠는가 하고 바울이 희망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이루어질 것인지 아닌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붙어있으면 구원의 자리에 들어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복음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된다는 것을 열심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교훈 :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거절하여 꺾인 이스라엘의 가지에 이방인들의 가지를 접붙여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셨다.

 

 

넷째 날(수) 12월 13일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롬 11:25).

 

1. 롬 11:25~27을 읽어 보라. 바울은 여기서 어떤 큰 사건을 예언하는가?

[롬11:25~27]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26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27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답: 민족적 이스라엘이 많이 구원의 대열에 참여할 때가 이른다고 예언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성경절들을 가지고 수 세기 동안 논쟁해 왔다. 그러나 몇 가지 사실은 명확하다. 우선 전체 논조는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구제하신다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 11장 서두에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고 했던 질문에 대하여 이곳에서 대답한다. 그의 대답은 물론 ‘아니다’이다. 바울은 이스라엘이 오직 ⑴ ‘부분적으로’,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단지 ⑵ ‘한시적으로’ “우둔(그리스어 ‘프로시스’는 ‘단단함’을 의미함)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면 “이방인의 충만함”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대다수는 이 구절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는 대사명의 성취를 표현하는 것으로 본다. 복음이 모든 곳에 전파될 때, “이방인의 충만함”이 이루어진다.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믿음이 보편화되고,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면,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진다. 바로 이러한 때에 많은 유대인이 예수님께로 돌아올 것이다.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26절)는 말씀도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이다. 우리는 이것을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특별한 선포에 의하여 모든 유대인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성경 어디에도 인류 전체 혹은 특별 지역에 대한 구원의 보편주의를 가르치는 곳은 없다. 바울은 그 중에 “얼마”라도 구원하기를 소망하였다(14절). 다른 민족과 마찬가지로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메시아를 영접했고, 어떤 이들은 거부하였다.

로마서 11장을 주석하면서 엘렌 G. 화잇은 “복음의 마지막 선포”의 때에 “많은 이(유대인들)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속주로 영접할 것이다”(사도행적, 381)라고 말하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이루어야 할 막중한 과업이 있다. 주님께서는 이방인들이 모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며 이방인들뿐 아니라 유대인들도 모이 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유대인들 가운데는 개종하게 될 사람들이 많이 있으며 그들을 통하여 우리는 비치는 등불처럼 퍼져 나가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이다. 어디를 가든지 유대인들이 있으므로 현대 진리의 빛이 그들에게도 소개되어야 한다. 그들 중에는 빛으로 나와서 놀라운 능력으로 하나님의 율법의 불변성을 선포할 많은 사람들이 있다”(복음전도, 578).

 

<부가설명> 로마서 11장은 9장부터 말하는 내용의 연장선에서 이해해야 한다. 교과 저자도 그렇게 했다. 그런데 여기에 와서 갑자기 구원받는 무리에 대한 내용으로 설명하고 있다. 만일 9장부터 말하는 연장선에서 이해한다면 설명이 좀 달라져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바울은 그런 의미를 기록하고 있는 것 같다. 즉 이방인들의 복음 전파 사업으로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롬11:13,14)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에게 맡겼던 그 사명을 감당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시기하여서라도 구원의 복음을 받아서 구원의 자리에 들어올 사람들이 있다고 말하고 있지 않는가. 그렇게 하여 그들도 구원사업을 증거하는 일에 동참하여 이스라엘의 남은 자손들을 불러들이는 역할을 잘 감당할 것이고 그런 결과로 이방인 그리스도인이나 이스라엘민족의 그리스도인이나 모두 하나님의 영적 이스라엘이 되어 온 이스라엘이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것이 11장의 말씀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훈 :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때, 많은 유대인이 구원을 받는 무리 가운데 합류할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영적인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

 

 

다섯째 날(목) 12월 14일 죄인들의 구원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롬 11:32).

 

롬 11:25~27에서 우리는 바울이 자기 민족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볼 수 있다. 동족의 일부가 자신과 복음의 진리에 저항하여 싸우고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많은 이들이 예수께서 메시아임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1. 롬 11:28~36을 읽어 보라. 바울은 유대인과 모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묘사하는가? 그는 하나님의 놀랍고 신비한 은혜의 능력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롬11:28~36]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 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30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에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31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답: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후회함이 없으신 사랑으로 일하신다. 사람이 그의 신비한 능력을 측량할 수 없다고 했다.

 

위 성경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대조되어 있지만,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과 은혜가 죄인들에게 부어진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도 전에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로 계획하셨고, 그분의 뜻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로 사람들을, 때로는 민족들을 사용하기로 계획하셨다.

 

2. 기도하는 마음으로 롬 11:31을 자세히 읽어 보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전도에 관한 어떤 중요한 교훈을 얻어야 하는가? 유대인뿐 아니라 우리가 접촉하는 모든 사람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

[롬11:31]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답: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대하고 복음을 전해야 한다.

 

수세기 동안 기독교가 유대인들을 더욱 잘 대했다면, 더 많은 유대인들이 그들의 메시아를 찾았을 것이다. 기원 후 몇 백 년 동안 이루어진 큰 배도와 제칠일 안식일을 배격하고 일요일을 선호하는 등 기독교 내에서 이루어진 급격한 이교화로 인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오기란 분명 쉽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께서 자신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깨닫고 다른 이들에게 그런 자비를 보이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만약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마 18:23~35 참고).

 

<부가설명> 9장부터 11장은 그 중심 사실이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을 맡기는 것에 대한 것이다. 그런 중에 이스라엘이 이런 사명을 망각하고 사명의 특권을 구원받는 특권으로 착각 오해하여 사명을 버린 사실을 지적하고 그 사명이 이방인이 중심이 된 교회로 넘어온 것을 나타낸다. 그 이방인들이 복음을 전하여서 이스라엘이 다시 복음으로 들어오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이 복음을 깨달았을 때 옛날에 그들에게 주신 사명을 바르게 이해하고 이제야 그 사명을 능력으로 감당하게 될 것이고 그 결과로 이스라엘 민족과 이방인이 다 함께 영적 이스라엘이 되어서 함께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가르친다. 이렇게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는 사람이 가히 측량할 수 없다고 찬탄하면서 11장을 마무리한다. 이런 섭리 안에는 어떻게 하든지 모든 사람이 자신이 아담 안에서 죽은 사망의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하셔서 예수 안에서 베풀어놓은 생명을 얻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다함없는 사랑이 넘친다고 말한다. 우리는 역사의 종말에 이 영원한 복음을 전파할 사명을 받은 남은 자손들로서 주신 사명을 바르게 수행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잘려나가는 가지가 될 것이다. 원 가지도 아끼지 않고 잘라내신 하나님께서 접붙인 가지가 제 일을 하지 않으면 어찌 자르기 않겠는가? 우리는 매일매일 헌신하고 참 이스라엘로서 충성해야 할 것이다.

 

교훈 : 유대인들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자비를 이방인들에게 나타내야 했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할 차례이다.

 

 

여섯째 날(금) 12월 15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사도행적>, 77~79 “산헤드린 앞에서”, 112~114 “박해자에서 제자로”, 474~475 “로마에서 편지함”, <복음전도>, 573~577 “천주교인을 위한 사업”, <가려 뽑은 기별 1권>, 155~156 “전파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될 것”을 읽어 보라.

 

“한 국민으로서의 이스라엘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받을 만한 자들로서 상당히 많은 무리가 그들 중에 남아 있었다. 구주의 초림 때에 침례 요한의 기별을 기쁨으로 받아들여 메시아에 관한 예언들을 새로이 연구하게 된 충실한 남녀들이 있었다. 초기 그리스도 교회가 세워졌을 때, 이 교회는 나사렛 예수를 그들이 기다려 온 분으로 인정한 충실한 유대인들로 구성되었다”(사도행적, 376~377).

 

“유대인 중에는 다소 사람 사울처럼 성경에 능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이들은 경이로운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율법의 불변성을 선포할 것이다.… 복음 기별의 마지막 선포에 있어서 지금까지 무시되었던 계층의 백성들을 위하여 특별한 사업을 해야 하는 이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자들이 세상 각처에서 발견되는 유대인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기를 기대하신다. 여호와의 영원한 목적을 설명함에 있어서 구약 성경을 신약 성경과 합할 때 이것은 많은 유대인에게 새로운 창 곧 영혼의 부활의 아침처럼 될 것이다”(사도행적, 381).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하나님의 율법, 특히 안식일 계명이 날카롭게 부각되는 마지막 때에 재림신도들처럼 십계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대인들이 세계 앞에서 중대한 문제들을 증명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한 기대가 아닐까요? 하지만 안식일 준수에 관하여 재림교인들은 유대인들과 차이가 있습니다. 토의해 보십시오.

※ 유대인들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안식일 준수의 성경적 의미를 피차가 깊이 연구해서 성경적이 되어야 할 것이다. 

 

➋ 여러 교회 가운데 재림교회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가장 성공적인 교회가 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대의 지역에 사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대 또는 그대의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 재림교회는 유대교와 같이 십계명을 온전히 준행해야 할 하나님의 계명으로 믿고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들과 접촉하여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친교하는 것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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