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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 과 택하심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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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용범 작성일17-12-09 01:45 조회2,2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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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 과 택하심

 

 

기억절 :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롬 11:1)

 

 

첫째 날(일) 그리스도와 율법

 

*도입질문: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율법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품성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행위적이고,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도구라고 오해할 수가 있습니다. 율법에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드러냅니다.(요5:39) 그래서 율법을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이라고 정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시는 사랑을 하시는 분이므로 사람들에게 명령이나 강요하시지 않습니다. 또한 사람은 나면서부터 하나님과 분리되어 하나님 보시기에 죽은 자들이기 때문에 죽은 자들에게 어떤 행위를 요구하실 수가 없습니다. 죽은 자는 죽은 자의 행실만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명령이나 강요로서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니고, 죽은 자들이므로 율법을 행할 수 있는 능력도 없음을 아심으로 요구하실 수도 없습니다.

 

율법에 대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조건이나 명령의 순종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인 사람들에게는 율법은 하나님을 오해하게 만드는 수단이 됩니다. 율법은 우리들에게 명령하지 않고 약속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서 이루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율법을 글자에만 머물러 있고, 글자대로의 행위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행위가 되며, 그런 행위는 하나님 보시기에 없는 자의 행위이므로 그 행위도 없는 것 즉 죄입니다.(롬14:23)

 

글자로서의 율법, 글자대로의 행위에 순종하고 있느냐의 여부로 판단한다면 율법의 기능을 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우리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거울이며, 우리가 스스로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율법을 주신 하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 속에서 율법이 이루어지도록 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시는 것입니다.

 

율법의 글자로부터 율법을 주신 분께로 갈 때 율법은 완성됩니다. 그리스도가 율법의 초점이며 핵심입니다. 그리스도를 알게 될 때 율법은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율법의 시작이며 마침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알게 될 때 율법을 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동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 날(월) 은혜의 선택

 

*도입질문: 하나님의 선택이 은혜로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주실 가나안이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요충지로서 그들을 통해 구원에 대한 복된 소식이 온 세상에 전파되길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선택은 강제가 아닌 은혜의 선택이었습니다. 은혜의 선택이란 의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온 세상에 구원의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셨지만, 그 계획에 대하여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거절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거절하였을 뿐 만 아니라 메시아를 죽였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완전히 거절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계획을 거절하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버리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선택의 자유를 주시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사랑이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는 선택을 하였어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더 많은 은혜를 주시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를 호소하십니다. 그래서 육신적인 이스라엘로서의 의미는 사라졌지만,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선택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귀한 영적 이스라엘이 됩니다.

 

 

셋째 날(화) 원 가지

 

*도입질문: 바울이 사용한 원 가지와 접붙인 가지는 누구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나무의 원 가지는 복음을 처음 위탁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 못된 선민의식으로 이방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 하기보다는 스스로 장벽을 쌓았고, 메시아를 거절함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목적을 이룰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원 가지를 자른 것이 아니라 원 가지 스스로가 하나님을 거절함으로 스스로가 소멸 된 것입니다. 원 가지는 잘려졌지만 뿌리와 몸통은 여전히 있고, 뿌리와 몸통을 기반으로 잘려진 가지를 대신하여 새로운 가지를 접붙이셨습니다. 그 새로운 가지는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모든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보면 이방인이었습니다.

 

원 가지인 이스라엘이 끊어졌고 대신에 그리스도의 피를 믿은 이방인들로 인해 접붙임 받은 가지는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구원의 복음을 온 세상에 힘차게 증거하였습니다. 이 일을 통해 원 가지인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들이 거절한 그리스도를 깨달아 알고 받아들여 구원 속에 있게 하고자 하신 것이 하나님의 의도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이방인 모두가 그리스도를 알게 됨으로 영적 이스라엘을 이루어 구원받는 백성들이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가지신 뜻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서도 우리는 관심을 갖고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 합니다.

 

 

넷째 날(수)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도입질문: 온 이스라엘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온 이스라엘이란 영적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상징인 이스라엘은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로는 육신적인 이스라엘의 개념을 벗어나서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인 모든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 더 이상 육신적인 이스라엘은 그 의미를 상실하였고,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일 때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하는 영적인 이스라엘의 무리에 들어가게 됩니다.

 

구원의 복음이 교회에게 위탁되었지만, 그것은 이방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도 위한 것입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선택함을 통해 새로운 영적 이스라엘이 됩니다.

 

재림교회가 유대인들과 공통점들이 많기 때문에 유대인들과의 유대가 잘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큽니다. 안식일도 큰 공통점입니다. 공통된 것들로부터 출발하여 예수님을 구원자로 선택하게 하여 영적 이스라엘을 이루는 데에 재림교회가 많은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다섯째 날(목) 죄인들의 구원

 

*도입질문: 하나님이 창세전에 가지신 위대한 계획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하나님은 창조주가 되시기 전에 구원자가 되셨습니다.(사43:1) 사람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시는 사랑을 하시고, 사람에게 주시는 선택의 자유는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선택인 하나님을 창조주로 받아들이지 않는 선택도 할 수 있고, 그 선택의 결과는 하나님과의 분리로 인해 영원한 사망이 됨으로, 하나님은 모든 선택의 결과에 대한 대비책도 이미 마련하셔야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창세전에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고, 창세전에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이 되셔야 하셨습니다.(엡1:4-5)

 

선택의 자유를 주심으로 사망의 가능성에 따라 계획하신 구원의 계획이 실제로 사망을 선택하는 일이 발생하였을 때, 구원의 계획대로 하나님은 계획을 선언하셨습니다.(창3:15) 구원의 계획의 핵심인 여자의 후손이 오셔서 발꿈치를 상하는 일이 어린 양으로 예표된 예수님의 죽음임을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는 행위를 통해 보여주셨습니다.(창3:21)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을 상징하는 제사제도를 통해 실제로 예수님이 오셔서 하실 일에 대한 믿음을 보도록 하셨습니다. 그리로 마침내 때가 차매 예수님이 오셨고, 창세전의 계획대로 어린 양처럼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심으로 계획을 실제로 이루셨습니다.(요19:30)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푸시고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행위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대로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행위를 보고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엡2:4)으로 인해 자신의 생명을 바침으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감동만이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을 일으키고, 그 반응은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선택하게 함으로 생명과 연결이 되게 합니다. 모든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이 우리에게 주신 선택의 자유로 하나님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변함없는 사랑을 주시고, 그 사랑의 감동으로 하나님을 선택함으로 구원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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