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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과 사회적인 관계(질문, 대답, 부가설명)04/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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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04-17 06:46 조회2,0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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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2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14분

 

● 연구 범위 : 벧전 2:13~23, 벧전 3:1~7, 고전 7:12~16, 갈 3:27~28, 행 5:27~32, 레 19:18

 

● 기 억 절 :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

 

또한 베드로 서신은 당시의 까다로운 사회적인 문제를 피하지 않고 다룬다. 예를 들어 신자들은 당시의 이교 로마 제국처럼 억압적이고 부패한 정부의 통치하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베드로는 그의 독자에게 뭐라고 말했으며 그 말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그리스도인 노예들은 주인이 그들을 가혹하고 불공정하게 대할 때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물론 현대의 고용주와 피고용인 사이가 1세기의 주종관계와 다를지라도 베드로의 언급은 부당한 상관을 상대해야 하는 자들에게 반향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베드로는 신자들이 나쁜 대우를 받을 때에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할지를 보여주는 사례로서 예수님이 그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셨는지를 주목하였다(벧전 2:21~24).

만약 남편과 아내가 종교적인 신념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하여 의견이 다르다면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마지막으로 만약 사회적 또는 정치적인 질서가 심각하게 부패하거나 기독교 신앙과 모순된다면 신자들은 그러한 사회 질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학습 목표

 

깨닫기 :  하나님이 세상에 여러 차원의 권위를 세우셨으며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권위들에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느끼기 :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와 권위를 존중하며 그것에 순종해야 할 의무감을 느낀다.

행하기 : 기존의 권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에 관하여 베드로의 권면과 예수님의 모본을 따른다.

 

➌ 교회와 신자들이 완전하지 않은 세상의 권위에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사회질서를 혼란시키지 않는 것이고 말씀의 권고를 이행하는 것이다. 

➍ 직장에서 상사나 고용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부당하게 할 때에 보장된 권리를 온유로 제시하는 것은 잘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심정으로 대처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➎ 완전하지 않은 국가 또는 사회의 변화를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습니까?

※ 자기 영역에서 이웃 사랑을 실천하여 감화를 확장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➏ 아내와 남편의 신앙이 서로 일치하지 않을 때에 재림신자인 배우자의 어떤 태도가 실질적으로 그의 배우자를 구원하는 데에 도움이 될지 이야기해 봅시다.

※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실천하여 배우자가 감동을 받도록 하고 예수님을 보도록 해야 할 것이다. 

 

결론 :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바르고 선한 일을 행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동시에 어떻게 다양한 차원의 권위를 이해해야 할지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을 설명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예뿐 아니라 경건한 여성들의 예를 들어 신약 신자들의 모본으로 제시합니다.

 

 

첫째 날(일) 4월 16일 교회와 정부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벧전 2:13~14).

 

성경은 비록 오래 전에 기록되었지만 신자와 정부 사이의 관계같이 오늘날에도 매우 의미 있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몇 가지 경우에서 성경의 입장은 꽤 명확하다. 계시록 13장을 보면 정치적인 세력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때도 있다. 그 같은 경우에 우리의 선택지는 분명하다(목요일 소지 참고).

 

1. 벧전 2:13~17을 읽어 보라. 정부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에 대하여 이 말씀이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가르치는 원칙은 무엇인가?

[벧전2:13~17]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16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17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

 

답: 정부와 일반적인 관계는 제도를 순복하고 관리들을 존경하라고 가르친다. 

 

로마 제국의 죄악은 그 국경 안에 거주하는 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다. 로마 제국은 무자비한 군사력을 이용하는 다소 변덕스런 야심가들의 뜻에 따라 커져갔다. 그래서 폭력적인 저항을 만났다. 체계적인 고문과 십자가 처형은 로마가 징벌하려는 자들에게 가하는 공포 가운데 두 가지 예에 불가하다. 로마 정부는 족벌주의와 부패가 만연했다. 지배 계층은 거만함과 무자비함으로 권력을 행사했다.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그의 독자들에게 황제로부터 지방 통치자에게 이르기까지 제국 안에 있는 모든 인간 제도의 권위를 수용하도록 충고하였다(벧전 2:13~14).

베드로는 왕들과 통치자들이 잘못을 행하는 자를 징벌하며 옳은 일을 하는 자들에게는 상을 준다고 주장한다(벧전 2:14). 그렇게 함으로 그들은 사회를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

사실 로마 제국은 그러한 모든 불의로 인하여 제국에 안정성을 제공했다. 그것은 전쟁을 억지했다. 로마가 확산시킨 잔인한 정의는 그럼에도 법률에 근거하였다.

그것은 군사적인 필요를 돕기 위해서 도로를 건설하고 화폐제도를 구축했다. 그렇게 함으로 로마는 인구가 증가하고 많은 경우에 번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정부에 대한 베드로의 충고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완전한 정부는 없다. 베드로의 서신을 받아보는 이들의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선량한 시민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고 비록 그들을 지배하는 정부가 완전하지 않더라도 가급적 그 땅의 법률을 따라야 한다는 베드로의 교훈을 배울 필요가 있다.

 

<부가설명> 국가 권력이 도덕성을 잃으면 잔인해진다. 그래도 악법이 무법보다 낫다는 논리는 틀린 것이 아니다. 베드로가 여기 권고하는 중심 문제는 권력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순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이고 또 악법이 무법보다 낫다는 것을 인식하라는 것이다. 무법하게 되면 혼란이 오고 질서가 깨어지면 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각 사람들 안에 있는 악한 본성을 제멋대로 드러내기 때문에 악법으로 다스리는 것보다 훨씬 어려워진다. 재림성도들은 올바른 시민으로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여 국가와 하나님께 충성을 드러내는 생활을 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법이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고 침범할 때에 재림성도들이 서 있어야 할 자리는 물을 필요가 없다. 하나님 편에 굳게 서 있어야 한다. 국가가 국법을 따라 핍박하더라도 감내하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는 한 그리스도인은 국법을 존중하고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을 존경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교훈 : 성경은 지상의 권위가 비록 완전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것에 순종하여 그 제도와 법을 따르는 선량한 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둘째 날(월) 4월 17일 주인과 종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벧전 2:18).

 

1. 벧전 2:18~23을 읽어 보라. 오늘날 우리는 이 어려운 내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우리는 여기서 어떤 원칙을 끄집어 낼 수 있는가?

[벧전2:18~23]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9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23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답: 스스로 고칠 수 없는 제도 하에 있을 때에 제도를 따르는 것이 순리라는 것을 가르친다. 

 

자세히 읽어 보면 벧전 2:18~23은 노예 제도의 지지라기보다는 당시의 바꿀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에 관한 영적인 권면을 제시한다. 벧전 2:18에 ‘종’ 또는 ‘노예’로 번역되어 있는 그리스어는 ‘오이케테스’로서 가사 노예를 일컫는다. 엡 6:5에는 ‘종’을 의미하는 더 보편적인 단어인 ‘둘로스’가 사용되었는데 여기서도 종들에게 비슷한 권면을 제시하고 있다.

철저하게 계급화 되어 있는 로마 사회에서 노예는 주인의 절대적인 통제권 아래에 있는 법적인 소유물로 간주되었다. 그들을 온유하게 대하든지 엄격하게 대하든지는 주인의 마음이었다. 패배한 적군, 노예의 자녀, 부채를 갚기 위해 팔린 자들에 이르기까지 노예들은 다양한 경로에서 발생했다. 어떤 노예들은 큰 책임을 부여받기도 했고 주인의 큰 재산을 관리하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노예들은 재산을 소유하고 사업을 해서 이윤을 남겼으며 주인의 자녀를 훈육하기도 했다.

돈을 주면 노예에서 해방될 수 있었는데 그런 경우에 ‘속량함을 입었다’고 표현했다. 바울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런 표현을 사용하였다(엡 1:7, 롬 3:24, 골 1:14).

우리는 초기 그리스도인의 상당수가 노예였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스스로 변화시킬 수 없는 제도에 갇혀 있었다. 게다가 잔인하고 부당한 주인 밑에 있는 불운한 자들은 특별히 더 어려운 여건 가운데 있었다. 비록 주인이 선량하더라도 그들은 곤란한 경우를 마주해야 했다.

노예로 있는 모든 신자에게 주는 베드로의 훈계는 신약의 다른 진술과 일관성을 유지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처럼 순종하고 견뎌야 한다(벧전 2:18~20). 잘못이 있어 고통스러운 벌을 받는 자에게는 아무 공로가 없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의 정신은 부당하게 고난을 당할 때에 나타나는 법이다. 그러한 때에 신자들은 예수님처럼 욕을 욕으로 되갚지 않고 위협하지 않으며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자신을 맡겨야 한다(벧전 2:23).

 

<부가설명> 사람들은 때때로 자기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을 변화시키려고 무모한 노력을 하다가 목숨을 잃게 되거나 치명적인 곤란을 당한다. 성경은 이런 경우에 순응하는 인내와 온유를 나타내라고 한다. 종국에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을 믿고 맡기라고 권한다. 오늘날 민주주의 시대라고 해도 역시 국가의 법과 제도들이 재림신도들의 신앙생활을 완전한 자유를 누리도록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가능한 순응하며 하나님께 불충성이 되지 않는 상태로 법과 제도를 따라 살아가려고 한다. 베드로의 권고가 이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할 때에 환난과 핍박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 전능하신 능력으로 그들을 구원하지 않고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이 세상은 지나가는 세상이고 아직도 사단이 왕노릇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질 때가 되면 모든 것이 낙원으로 회복될 것이다. 그때까지 그리스도인은 세상 제도 아래서 하나님께 충성하고 정부에 선한 시민으로 충실하게 생활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다가 환난과 핍박을 받아도 인내하며 재림과 부활을 고대해야 한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한계가 아니겠는가?

 

교훈 : 부당한 주인 아래에 있는 노예일지라도 그가 그리스도인이면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고 주인에게 순종하고 참음으로 그리스도의 정신을 나타내야 한다.

 

 

셋째 날(화) 4월 18일 아내와 남편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벧전 3:1).

 

1. 벧전 3:1~7을 읽어 보라. 베드로는 여기서 어떤 특별한 상황에 대해 말하고 있는가? 이 말씀은 오늘날의 결혼 생활과 얼마나 관련성이 있는가?

[벧전3:1~7]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3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7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답: 불신자 남편을 둔 아내에게 권면하면서 일반적인 그리스도인 부부에게 권면하고 있다. 아내들은 불신자 남편이 아내의 모습에서 예수님을 보도록 살라고 권고하고 그리스도인 남편들에게 아내를 귀하게 여기라고 권면한다. 가정에서 부부간의 불화로 신앙생활에 막히지 않게 하라고 권고한다. 아내는 남편을 공경하여 순복하고 남편은 아내와 예수님의 지혜로 동거하라고 권고하였다. 

 

벧전 3:1~7을 보면 베드로가 다루고 있는 문제들을 이해할 수 있는 한 가지 중요한 단서가 있다. 벧전 3:1에서 베드로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남편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서 그는 그리스도인 아내가 믿지 않는 남편과 결혼했을 때에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믿음을 공유하지 않는 남편과 결혼한 그리스도인 아내는 여러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녀는 남편과 이혼해야 하는가? 바울과 마찬가지로 베드로도 그리스도인 아내들에게 불신자 남편을 떠나라고 제안하지 않는다(고전 7:12~16 참고). 오히려 베드로는 불신자 남편과 사는 아내들에게 모범적인 삶을 살라고 말한다.

1세기 로마 제국 내의 여인들에게 주어진 역할은 대체로 개별 사회에 따라 결정되었다. 예를 들면 로마인들의 아내들은 베드로의 서신을 받는 지역의 여인들보다 재산이나 보상에 관하여 더 많은 법적 권리를 보장받았다. 그러나 어떤 사회에서는 여인들이 정치적인 참여나 통치 또는 대부분의 종교적인 지도력에서 배제되었다. 베드로는 믿는 여인들에게 그들이 처한 사회에서 인정을 받을만한 일련의 표준을 따르라고 충고한다. 그는 그들에게 순결하고 경외심을 가지라고 조언한다(벧전 3:2). 그는 그리스도인 여성들이 화려한 머리치장, 보석, 비싼 의류보다는 내적인 아름다움에 관심을 기울이라고 권면한다(벧전 3:3~5). 그러면 그리스도인 여성들은 매우 친밀한 관계 속에서 남편에게 기독교 신앙을 소개할 수 있을 것이다.

남편들은 베드로의 조언을 마음대로 아내를 다루어도 좋다는 의미의 면죄부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가 지적했듯이 남편들은 아내에게 배려심을 보여야 한다(벧전 3:7). 비록 베드로가 불신자 남편과 결혼한 그리스도인 아내라는 특수한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인 결혼 생활의 이상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다. 그리스도인 배우자는 매일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투명한 진실성을 가지고 서로를 지지하면서 살아야 한다.

 

<부가설명>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불신자 남편을 둔 아내와 불신자 아내를 둔 남편에게 권고한다. 신자 된 사람이 예수님의 정신을 생활로 드러내어 불신자인 배우자가 예수를 믿게 되도록 하라고 가르친다. 베드로도 같은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동시에 신자 부부 사이에는 서로가 예수님의 모습을 나타내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사람들에게 천국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누군가가 그리스도인 가정에 왔다가 거기서 천국을 보고 갈 수 있도록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예수를 믿고 산다는 것은 자기가 사는 모습이 천국을 보여주는 모습이 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성령의 열매가 충실하고 빛의 아름다움이 식구들에게서 보이면 방문한 사람들이 예수님이 정말 살아계셔서 그의 백성들을 이끄신다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지 않겠는가?

 

교훈 : 불신자 배우자를 둔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행실로 배우자를 구원하기까지 모범적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넷째 날(수) 4월 19일 사회적인 관계

 

1. 롬 13:1~7, 엡 5:22~33, 고전 7:12~16, 갈 3:27~28을 읽어 보라. 바울 서신에 나오는 이 말씀들은 벧전 2:11~3:7의 말씀과 어떻게 비교가 됩니까?

[롬13:1~7]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3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4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5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 6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저희가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엡5:22~33]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29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31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갈3:27,28]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벧전2:11~3:7]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3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16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17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 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9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23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3:1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3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7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답: 베드로나 바울이 국가와 교회, 가정문제 주인과 종의 관계에 대하여 동일한 사상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정신이 그들의 정신이고 사상이기 때문에 동일한 것은 당연하다. 

 

벧전 2:11~3:7에서 제기된 몇 가지 문제점들은 바울의 서신에서도 취급된다. 놀랍게도 그의 권면은 베드로전서의 내용과 일관된 면이 있다. 예를 들어 바울은 베드로처럼 그의 독자들에게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롬 13:1) 복종하라고 권면한다. 통치자들은 하나님이 세우신다. 그들은 선한 일이 아니라 악한 일에 두려움이 된다(롬 13:3).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롬 13:7)해야 한다.

바울 역시 비신자와 결혼한 여인은 모범적인 삶을 살아서 그 결과 남편들이 신자가 될 수 있게 하라고 강조한다(고전 7:12~16). 바울이 제시하는 그리스도인 결혼의 모본 역시 상호 헌신에 기초한다.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의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엡 5:25). 더욱이 그는 종들에게 그들이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처럼 지상의 주인들에게 순종하라고 가르친다(엡 6:5).

즉 바울은 기꺼이 법이 허용하는 문화의 테두리 안에서 일하였다. 그는 자신의 시대에 무엇이 바뀔 수 있고 무엇이 바뀌지 않을지를 이해했다. 그러나 그는 기독교 신앙 안에 인간에 대한 사회적인 통념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있음을 보았다. 단지 예수님이 사회 질서를 바꾸기 위해서 어떤 종류의 정치적인 혁명도 일으키려고 하지 않으셨던 것처럼 베드로나 바울도 그 길을 따랐다. 하지만 그 사회의 경건한 백성들이 그들의 감화를 증폭시킬 때에 변화는 이르러 올 것이었다.

 

2. 갈 3:27~29을 읽어 보라. 신학적인 진술을 담고 있는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대하여 사회적으로 어떤 중요한 의미를 제시하는가?

[갈3:27~29]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답: 그리스도인은 사회와 국가의 제도와 상관없이 다 일체된 사람들이라고 가르친다. 그들에게는 오직 예수님만이 있을 뿐이다. 그들이 사는 사회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모습을 드러내어 사회가 이정하는 평등의 모본을 보여야 할 것이다.

 

<부가설명> 그리스도인이 살고 있는 곳이 이 세상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세상을 떠나서 하늘에 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 처하여 살면서 하늘의 모습을 세상에 증거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세상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단이 세상 임금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만일 하나님께서 전혀 간섭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이것보다 훨씬 더 참담할 것이다.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세상을 간섭하신다. 환난의 때에 대하여 예수께서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날들을 감하지 않으면 육체로 구원받을 자가 없을 것(마24:22)이라고 하신 것처럼 지금도 하나님께서 세상에 최소한의 간섭을 하신다. 마치 욥을 시험하는 사단에게 제한하신 것처럼. 그러나 세상은 아직도 사단이 사망으로 왕노릇하고 있다. 그의 때가 될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사단이 하는 일을 하게 두실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사단의 공격의 대상이 된다. 때로는 혹독하게 때로는 감언이설로 그리스도인을 핍박한다. 이런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은 자유자나 종이나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하나된 공동체와 연합된 사랑을 보이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정신이 재림신도들의 정신이어야 한다.

 

교훈 : 우리는 우리가 처해 있는 사회와 문화가 제안하는 규범 안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되 복음의 감화력으로 사회가 변화되기를 바라야 한다.

 

 

다섯째 날(목) 4월 20일 기독교와 사회 질서

 

비록 인간 조직과 정부에 결함과 죄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정부와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그들의 경험이 좋지 않았지만, 바울과 베드로는 이 땅의 신자들에게 인간 권위에 순종하라고 권면한다(벧전 2:13~17, 롬 13:1~10). 그리스도인들은 세금도 납부하고 노역의 의무도 이행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되도록이면 모범적인 시민이어야 한다.

 

1. 행 5:27~32을 읽어 보라. 여기서 베드로와 사도들이 말하는 순종과 벧전 2:13~17에서 말하는 세속 권세에 대한 순종 사이에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행5:27~32] 저희를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28 가로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벧전2:13~17]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16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17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

 

답: 사도행전 5장에는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말했고, 베드로서의 말씀은 사회 제도 안에서 질서를 따르도록 하라고 권고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다른 상황이다. 

 

교회의 이른 성공은 베드로와 요한의 체포로 이어졌다(행 4:1~4). 그들은 관원과 장로, 서기관들에게 조사를 받고 설교를 삼가라는 경고와 함께 훈방되었다(행 4:5~23). 얼마 후 그들은 다시 체포되었고 경고를 따르지 않은 이유에 대해 심문을 받았다(행 5:28). 그때 베드로는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고 대답하였다.

 

2. 앞서 살펴본 말씀에서 우리는 어떤 진리를 배울 필요가 있는가?

 

답: 하나님의 뜻과 세상이 충돌할 때에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베드로는 말과 행동이 다른 위선자가 될 수 없었다. 하나님을 따르든지 인간을 따르든지의 문제 앞에서 선택은 명확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리스도인들은 정부에 협조적이고 순종적이었다. 그러면서도 사회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도덕적인 문제가 위기에 처할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가치관과 가르침을 반영하는 그런 종류의 사회 변화를 합법적인 방식으로 증진시키는 일에 참여해 왔다. 이런 일들을 이루는 방식은 여러 요인에 좌우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충성스럽고 신실한 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해서 사회를 개선시키는 일은 할 수도 없고 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3. 레 19:18, 마 22:39을 읽어 보라. 사회 변화가 이웃의 삶을 개선시킬 수 있다면 어떻게 이웃을 우리 몸처럼 사랑하라는 명령에 변화를 위한 사역이 포함될 수 있는가?

[레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마22: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답: 결코 쉽지 않지만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 번져나가면 사회가 사랑의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부가설명> 우리가 아는 대로 십계명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1계명에서 4계명은 하나님 사랑, 5계명에서 10계명은 사람 사랑하는 것이다. 사람 사랑하는 것은 바로 세상에서 도덕적으로 선한 삶을 살라는 것을 간단명료하게 최소한으로 구체화한 것이다. 사람들이 참으로 이런 정신으로 살아가면 사회가 변화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을 사랑하는 능력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때에 가능해진다. 현재 인간의 상태로는 이런 사랑을 실현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더 이기적이 되고 더 사나워진다. 그럴지라도 그리스도인은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선한 이웃이 되어야 한다. 베드로나 바울이 이것을 온유한 말로 가르치고 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이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사랑을 최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사회구조가 이것을 용납하지 않을 때에는 고난을 당할지라도 하나님 편에 굳게 서야 한다. 베드로는 이것을 실천으로 드러내었다. 우리가 세상에서 서로 도우고 타협(?)할 경우가 있을지라도 이 원칙을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야 하는 일이 제시될 때에는 단호히 거절할 수 있는 원칙을 분명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신앙생활은 신앙원칙을 준수하는 것이다. 

 

교훈 : 결함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현재의 권위와 제도를 따르는 모범적인 시민으로 살되 예수님의 가치관과 가르침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에 참여해야 한다.

 

 

여섯째 날(금) 4월 21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각 시대의 대쟁투> 582~592, 593~602, 613~634에서 “절박한 최후의 위기”, “믿음의 기준이 되는 성경”, “환난의 때”를 읽어 보라.

엘렌 G. 화잇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이 훌륭한 시민으로 그들의 나라 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심지어 신자들에게 공개적이고 노골적으로 지역의 일요일 법령을 어기지 말라고 했다. 우리가 당연히 제칠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하지만 고의적으로 일요일 노동을 금하는 법을 위반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재림신자들이 법에 순종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만약 어떤 노예가 주인으로부터 도망했다면 법은 그 노예를 주인에게 송환시키라고 명한다. 그러나 엘렌 G. 화잇은 그러한 법을 비판하면서 결과에 상관없이 재림신자들은 그러한 법에 순종하지 말라고 했다. “인간의 법률이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에 어긋날 때, 우리는 어떤 결과가 올지라도 후자에 순종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법률은 노예를 그 주인에게 넘겨주도록 요구하지만, 우리는 순종하지 말아야 하며, 이 법을 범한 결과도 감당해야 한다. 노예는 어떤 사람의 소유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정당한 주인이시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피조물을 그의 손에 넣고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할 권리가 없다”(교회증언 1권, 201~202).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권리를 절대 주장해서는 안 되는지에 관하여 토의해 보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권리가 무엇인지를 함께 생각해 보십시오.

※ 그리스도인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 사회가 보편적으로 누리는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양보할 수 있을 때 양보의 미덕은 감동을 일으킬 것이다. 

 

➋ 그리스도인들의 감화력이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켰던 사례가 있습니까? 그런 사례로부터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합니까?

※ 나는 잘 모르지만 그런 예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 사례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➌ 반대로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의 부조리를 바꾸기보다 오히려 묵인하거나 합리화했던 경우가 있습니까? 그러한 예로부터 우리는 또한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합니까?

※ 이런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 사회제도를 스스로 변화시킬 수 없다면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영향을 넓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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